[현장을 찾아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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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찾아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를 가다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0.11.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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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부지선정 공모 통한 주민참여형 사업
국산 13기 15MW 운영···3만 2850MWh 전력 생산
연간수익 중 3억원, 목장부지 내어준 주민 몫으로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공동목장 내에 조성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공동목장 내에 조성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지난 18일 오후 1시 30분,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공동목장. 드넓은 초원에는 큰사슴이오름(대록산·472m)을 배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은 대형 풍차가 풍속 10~15m/s의 남동풍을 맞으며, 세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달고 있는 풍력발전기 13기가 설치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이하 ‘가시리풍력단지’)’다.

부지 면적 2만 9649㎡에 조성된 15MW 규모의 가시리풍력단지는 한진산업의 1.5MW 터빈 7기(높이 70m·회전직경 77m)와 유니슨·효성의 750kW 터빈 6기(높이 50m·회전직경 50m)가 조합을 이루고 있다. 국내 제조사의 트랙 레코드(Track Record) 확보를 위해 국산화 풍력발전기로만 단지를 채웠다. 여기에 PCS(전력변환장치) 3MW, BAT 9M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구축돼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기여하고 있으며, 연간 1만 5715tCO2 가량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올리고 있다.

연간 이용률은 20~21%로 약 78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3만 2850MWh의 전력 생산을 통해 30~35억원 안팎의 수익을 내고 있다. 당초 기대했던 연간 수익 약 60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인데, 이는 SMP(전력시장가격) 하락세가 지속된 데 따른 것이다. 가시리풍력단지 소유·관리를 맡고 있는 제주에너지공사에 따르면 SMP가 kWh당 200원 이상이던 시기에는 실제 연간 수익이 기대치인 60억원을 상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풍력발전은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사업주체와 주민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환경 훼손과 발전기로 인한 소음, 인근 농업·목축업·어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해상풍력단지인 탐라해상풍력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7년 9월 완공된 30MW 규모의 탐라해상풍력은 2006년 발전사업허가와 개발사업시행 승인을 받았지만 주민들과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9년 뒤인 2015년에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상업운전을 시작한 탐라해상풍력은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 과정에서 주민수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에 제주도는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가시리풍력단지가 그 결과물이다.

여타 다른 풍력단지와는 달리 개발 당시부터 국내 최초로 부지선정 공모를 통해 주민수용성 제고에 무게를 두고 추진된 가시리풍력단지는 ‘주민참여형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9년 1월 이뤄진 공모에는 제주도 북쪽마을 3곳과 남쪽마을인 가시리 1곳이 참여했는데, 심사 결과 가시리가 최적지로 낙점됐다. 2010년 9월 착공에 들어간 뒤 2012년 2월 준공했고 같은 해 4월부터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총 사업비는 435억 8300만원으로 국비 254억 6700만원과 도비 181억 1600만원이 투입됐다. 2012년 7월 설립된 제주에너지공사는 4개월간 가시리풍력단지의 위탁관리 업무를 수행하다 그 해 11월 운영권을 이관 받았다.

가시리풍력단지는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 모델을 적용, 에너지갈등 문제를 풀어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제주에너지공사 관계자는 "10여 년 전 추진한 사업이라 현재와 비교하면 용량이 작은 수준이지만 국산화 실증을 위해 다양한 발전기로 구성했다는 점과 주민과의 협력을 통해 조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매년 가시리풍력단지 가동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 중 일부를 주민들의 몫으로 나누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전체 면적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는 가시리에는 500여가구 1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목장을 공동 소유하고 있는 주민들이 부지를 내어준 대가로 얻는 금액은 3억원. 여기에 연간 3000만원 가량의 발전소주변지역지원금은 별도로 받는다. 리 단위의 마을에 유입되는 액수로는 상당한 규모다. 마을의 주 소득원이 감귤농사와 밭더덕, 축산업 등인 점을 감안하면 풍력단지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을 살림 좋아지고 관광객도 늘었습니다”

정윤수 가시리 이장.
정윤수 가시리 이장.

현장에서 만난 정윤수 가시리 이장은 “이전에는 마을 살림이 풍족하지 않았는데, 풍력단지가 조성이 되면서 돈이 수혈이 되니까 마을에 생기가 돈다. 쉽게 이야기해 마을 형편이 좀 폈다”고 했다.

마을로 유입되는 발전기금은 장학금과 노인·부녀회·청년·사진·댄스 등 11개 동아리 활동지원 및 매년 문화축제 등을 위해 쓰인다. 또 오름·등반로 정비, 주민 복지, 편의 시설 설치 등에 활용되고 있다.

사업 초기 주민들의 반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축산 농가에서 블레이드(날개) 회전 소리로 인한 소나 말들의 자연 유산 위험을 걱정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이 마을 발전과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유치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정 이장은 "목장 부지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풍력단지를 조성해 수익을 얻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마을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이장은 축산 농가들이 우려했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풍력단지 완공 후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소나 말들이 학습효과가 생겨 블레이드 밑에서 풀도 뜯어먹고 편하게 잠을 자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풍력단지가 마을에서 5km 남짓 떨어져 있어 주민들도 소음에 대한 민원을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시리는 유채꽃길로 유명한 지역이다. 봄이 되면 노란 물결의 출렁임 속에서 추억·인생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풍력단지가 들어선 이후에는 이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유채꽃 뒤로 13개의 하얀색 대형 바람개비가 전해주는 이색적인 풍경을 덤으로 담을 수 있다.

정 이장은 “사람들이 풍력발전기를 모델로 해서 사진 촬영을 많이 한다. 특히 이 지역 노을이 아주 멋진데, 관광객들이 더 늘었다. 확실히 연계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이장은 “가시리 주민들은 풍력단지를 통해 청정에너지 생산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재생에너지 사업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발전시설의 일부를 마을에 준다든지 수익을 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윤우식 기자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전경.(사진=제주에너지공사)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전경.(사진=제주에너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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