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공룡’ 한전 신재생 발전사업 선언에 반대 목소리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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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공룡’ 한전 신재생 발전사업 선언에 반대 목소리 거세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1.02.1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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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발전업계·시민사회 “전력망 중립성·공정 경쟁 훼손” 주장
“한전 이미 발전공기업·특수목적법인 통해 재생E 사업 진행”
“재생E 사업 진출하려면 송전·배전 부분 분리 전제조건 돼야”

한국전력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진출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민간발전업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송배전과 전력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까지 진출할 경우 전력망 중립을 담보할 수 없고 공정한 시장 경쟁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에너지전환포럼과 기후솔루션·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한국풍력산업협회·민간발전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과 망중립성 훼손 이대로 괜찮나’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 선언은 전력 시장의 선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한전 위주의 독점체제를 공고화하는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날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전력산업 기능분리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맡은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는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망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민간 발전사업자는 망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가진 한전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전기 과(過)공급 시 재생에너지의 출력 제한이 필요한 데, 이때 송전망 제약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한전뿐”이라면서 “일반 발전사업자와의 정보 비대칭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력 제한이 수익성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전이 발전사업에 뛰어들 경우 정보의 비대칭뿐만 아니라 관련 규칙 제정의 불공정 가능성 등 한전과 그 외 발전사업자 간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덕환 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팀장도 “한전은 전력 시장의 비용, 전력계통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서 “한전이 전력판매와 재생에너지 발전 간 조직과 회계를 분리하겠다고 하지만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절대적인 중립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해외 사례를 참조해 한전 중심의 소매 독점 구조를 타파하고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EU국가들이 전력시장에서 거버넌스 개편을 시도하는 이유는 망중립성이라는 원칙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전 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의 전제조건은 송전과 배전 분리로, 이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이 발전공기업과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박원주 민간발전협회 사무국장은 “이미 한전 자회사인 발전공기업들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 할당량의 80%를 소화하고 있다”며 “사실상 한전이 재생에너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한전이 대형 사업을 견인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SPC를 만드는 방법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지역 상생모델을 만드는 것 역시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직접 진출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 민주노총 발전노조 정책위원장도 “한전이라서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조직은 경쟁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않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발전공기업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이런 식의 불필요한 경쟁을 통해서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탄소중립을 위해서 한전이 주장하는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보급만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한전이 말하듯 단순히 공급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일방적인 방안은 탄소중립 사회에 맞지 않는다”며 “분산 에너지자원을 갖고 있는 소비자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배전운영 방식이 아닌 새로운 효율관리 운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 전력시장에서는 에너지전환, 분산자원 확대에 따라 대형 유틸리티들은 전통 발전사업을 축소해나가고 신재생에너지, 배전망 확대는 늘리고 있다”며 “송변전은 별도 독립망 사업자가 수행하면서 망중립성과 공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럽, 미국 등 해외 전력시장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는 “많은 중소발전사업자들이 재생에너지를 선로에 물리지 못하는 등 계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전은 망사업자로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망 설치와 안정적인 운영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가 열린 다음날인 16일 기후솔루션과 에너지전환포럼, 환경운동연합 등은 국회 앞에서 한전의 재생에너지 진출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전의 재생에너지 진출을 허용할 경우 2030년 기준 51조에 달하는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에 대한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2050을 통해 이제 막 시작하는 재생에너지 생태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전의 재생에너지 진출 계획을 반대하는 이유로 △국내 전력시장의 실질적인 독점 사업자로서 망중립성 및 공정경쟁 훼손 우려 △재생에너지 사업 역량 미흡 △한전의 부채 증가에 따른 재무건전성 악화 등을 제시했다.

한전이 제시하는 ‘사업 역량’과 ‘경제성’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전이 지난 20년 동안 SPC 형태가 아닌 직접 개발한 사례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기존 발전사 대비 사업 역량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려우며 낮은 REC 가격, 계통 보강, 주민수용성 등이 사업 개발에 있어 보다 큰 리스크인 점을 꼬집었다. 또 경제성 측면에서도 한전의 주장처럼 향후 5.8GW의 발전사업을 모두 채권으로 조달하면 부채가 약 20조원 이상 증가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한전의 재무 건선성이 급격하게 악화된다고 주장했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한전이 발전자회사들을 제쳐두고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도가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전환 같은 대의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수익 창출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송배전을 운영하는 회사가 직접 대규모 발전 사업에 뛰어들면 장기적으로 시장구조의 건전성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대행은 “한전은 전력 부문의 공정하고 빠른 에너지전환을 위한 자신들의 역할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라면서 “전력망을 운영하는 회사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할일이 발전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전력 판매와 전력망 사업만 해온 한전은 앞서 대규모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사업에 직접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한전의 의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에너지전환 정책 성공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한전을 발전부문에 진출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현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며, 이달 말 혹은 내달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전은 망정보 공개를 투명화하고 금지행위 규정을 강화해 망중립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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