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로 전기산업 생태계 붕괴 위기…전기요금 정상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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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적자로 전기산업 생태계 붕괴 위기…전기요금 정상화해야”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3.04.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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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관련단체협의회, 정책 간담회 열어 성명서 발표
한전 경영난에 발주 감소·대금지급 지연 등 피해 심화
손양훈 교수 “지금이 전기요금 인상 마지막 골든타임”
조홍종 교수 “에너지 요금 독립결정위원회 신설해야”
전기관련단체협의회가 18일 서울 송파구 소재 전기회관에서 열린 ‘전기산업계 위기 대응을 위한 전기요금 정책 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전기관련단체협의회가 18일 서울 송파구 소재 전기회관에서 열린 ‘전기산업계 위기 대응을 위한 전기요금 정책 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 불발된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내달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전기계 협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전기요금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기요금 현실화가 지연될 경우 한국전력의 적자 가중으로 인해 국내 전기산업계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18일 대한전기협회와 한국전기공사협회, 한국전기산업진흥회 등 16개 전기계 협단체들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서울 송파구 소재 전기회관에서 ‘전기산업계 위기 대응을 위한 전기요금 정책 간담회’를 열어 전기요금 인상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전기요금 정상화가 지연되면 한전의 재정난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전력기자재 및 건설 발주 물량 감소로 전기산업이 위축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 전력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현 세대가 지불할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조기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지난해 32조 6000억원의 적자를 내며, 사상 최대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기존 최대치인 2021년 적자액 5조 8465억원의 5.6배다.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연료 가격 급등과 전력도매가격(SMP)이 2배 이상 늘었는데, 전기요금 인상은 제한되면서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협의회는 이날 한전의 경영난으로 인한 피해 사례로 △송·배전망 유지보수 발주 실적 감소 △배전 전력기자재 발주 물량 급감 △한전 발주 송·변전공사 준공 연장 및 대금 지급 지연 △기성 대금 미지급으로 소규모 업체 부도 가능성 증가 △한전 고유 업무 전가로 인한 협력업체 공사비용 증가 △표준품셈 일방적 개정으로 인한 배전단가계약 공사비 삭감 등을 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장현우 전기공사협회 회장은 “전기공사업계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 따른 송·배전 유지보수 예산 축소로 발주 물량 감소와 준공 연장, 공사대금 지연 등 이중·삼중 피해를 입을 위기에 몰려 있다”며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전력산업 전반의 어려움으로 확산돼 결국 국민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를 볼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전기공사협회 산하 기관인 한국전기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전의 송·변·배전 분야 유지보수 예산 감소로 인한 최근 5년간 전기공사업계 피해 규모는 연 평균 8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한전이 재정 건전화를 이유로 2026년까지 송·변전 투자예산을 기존 계획안보다 축소하며, 전기공사업계 손실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전은 향후 5년간 송·변전 투자예산을 기존 16조 7532억원에서 1조 395억원 줄어든 15조 7137억원, 배전은 18조 9050억원에서 1조 310억원 감소한 17조 8740억원으로 조정했다. 전기공사업계 매출과 직결되는 송·변·배전 관련 예산을 연평균 약 4140억원씩 깎은 셈이다.

전력기자재 제조업계도 된서리를 맞았다. 한전의 변압기, 개폐기 등 주요 전력기자재 발주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현소영 전기산업연구원 실장은 “개폐기는 민간 발주량이 전무하고 변압기도 한전 발주량이 전체 시장의 약 80%를 차지한다”며 “한전 적자 행진으로 인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우식 전기산업진흥회 전무는 “실제 한전의 기자재 구매 물량은 2021년 1억 4900만대에서 지난해 1억 3400만대, 올해 1억 1600만대 수준으로 연평균 12%씩 감소하고 있다”며 “한전 경영 악화에 따른 설비 투자 위축으로 전력기자재 업계는 발주 물량 감소와 단가 하락, 대금 지급 지연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이어 “전기요금은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사회적 비용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실화를 통해 한전과 제조업체의 상생협력 선순환 구조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인규 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한전 송전케이블의 계약 대비 저조한 발주로 인해 중소 전선업체들부터 협력업체들까지 공장 가동률 저하, 수주 부족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 등의 어려움에 처해있다”면서 “투자 동력 활성화에 따른 낙수효과로 인해 하루빨리 중소 전선업계 활로가 모색될 수 있도록 전기요금 해법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상호 전기연구원 전력망연구본부장은 “과거 한전 적자 발생 시 전력망 유지보수 투자비용이 부족해져 전력계통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서도 여전히 전문적인 분석이나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며 “전력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반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독립적인 규제기관이나 감독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갑원 전기협회 부회장은 “전기산업계는 고효율의 에너지의 공급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국리민복의 실현을 위해 오롯이 그 고통을 껴안아 왔다”며 “전기요금이 상승하면 국민의 실물경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가보다 낮은 수준의 비정상적인 수준의 가격체제에서 적정가격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담회 좌장을 맡은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 과정에서 에너지 소외계층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고 요금이 오른 만큼 에너지 절약 여력이 떨어질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한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공공기관들의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앞서 진행된 주제 발표에서는 손양훈 인천대학교 교수와 조홍종 단국대학교 교수가 발제를 통해 전기요금 동결에 따른 한전의 재무 위기가 전기산업 전체를 넘어 금융시장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양훈 교수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도 국내 요금을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며 “전기요금 인상 없이 버틴 후유증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지난해 발행된 회사채 47조원 중 한전채 단일 발행 규모가 32조원대에 달해 회사채 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발행한 한전채도 이미 9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전년 대비 증가 속도도 훨씬 빠르다”며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못하면 한전채가 크게 증가해 수급 불안·시장 불균형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 살림과 물가를 걱정해 전기요금 인상을 주저한다면 이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뒤로 이연시키는 것”이라며 “누구도 대신 지불해주지 않는다. 지금 내지 않으면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현재 요금체계라면 다가오는 여름 냉방전력 폭주를 피할 수 없다. 몇 년 전 있었던 전기요금 누진제 파동을 기억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요금 인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국민들에게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전기를 아끼는 생활을 요구해야 한다. 그 시그널이 요금 인상”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현실화, 이제는 용감한 결단을’ 주제로 발표한 조홍종 교수는 “당기 손실을 채권 발행으로 메꾼 한전은 이자만 매일 약 40억원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고 원금과 이자가 동시에 불어나고 있어 채권 발행 규모는 점점 커질 것”이라며 “특히 기준이자가 더 오르면서 채권 발행할 경우 올해 안에 자본잠식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안정적인 한전채 선호는 중소기업 사채 구축으로 이어져 자금난과 경영난으로 몰아가고 있다. 중소기업 채권 부도와 PF 대출 부실이 겹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미 증권회사를 중심으로 금융 위기가 전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 “전기산업 생태계 붕괴는 결국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의 기간산업 위기로 이어지고 탄소중립이나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도 불가능해진다”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서만 에너지공기업의 재정난이 산업, 금융까지 번지는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 교수는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OECD 37개국 중 36등이고 산업용은 22등으로 전기 수요 절감 노력이 있을 수 없다”며 “한전이 올해 기준연료비를 감안해 산출한 전기요금 인상액 kWh당 51.6원이 반영되면 전력소비 15.2%를 절감하고 에너지 도입 비용 감소에 따른 무역적자를 124억 달러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전기요금이 정치권의 선거 승리를 위한 끊임없는 포퓰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금융통화위원회에 준하는 에너지 요금 독립결정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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