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압정전복구 헐값 외주화에 협력사 “하루 30만원에 목숨 걸고 24시간 대기하란 말이냐”
한전, 오는 11월 입찰 예정…‘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강력 반발 “365일 정전감시·긴급 출동 업무 전가하나…적정 원가 하루 86만 8644원” “8명 주간공사 인력으로 24시간 대응 불가능…배전전공 600명 확보 난제” “시범 사업 참여 업체 70% 적자…한전 안 강행 시 업체당 연간 2억 손해“ “비용 절감 명분으로 공기업 책무 버리고 중대 위험 외주화 떠넘기지 말라”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원점 재검토 요구…한전 본사 대규모 집회 예고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2027~2028년도 저압정전복구 업무 운영 방안을 두고 저압 단가 협력업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해당 방안에는 한전 배전운영실이 70여년간 수행해 온 365일 24시간 정전감시와 긴급 출동, 초동 복구 업무를 저압 단가 협력업체에 아웃소싱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고 정전 대응체계를 강화한다는 명분에서다.
협력업체들은 한전의 취지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이번 방안이 적정 인력과 장비, 비용,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구조여서 경영 악화는 물론 근로자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위험의 외주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동술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회장은 “한전이 오는 11월 입찰 공고를 앞두고 전국 15개 본부에서 시행한 시범 사업에 참여한 업체의 70%가 적자를 호소하고 있다”며 “공기업의 비용 효율화가 영세 협력업체의 적자와 근로자의 안전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365일 24시간 정전 대응…“기존 업무에 야간·휴일 업무까지”
현재 저압 단가 협력업체들은 배전전공 2명과 내선전공 6명 등 8명의 인력을 중심으로 주간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전이 검토 중인 운영 방안이 시행될 경우 기존 주간 공사에 더해 야간과 휴일을 포함한 365일 24시간 정전 대기와 출동, 복구 업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전 측은 배전전공 4명과 내선전공 6명 등을 최소 인력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협력업체들은 한전 기준에 맞춰 인력을 늘리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국 저압 단가 협력업체 사업소를 약 300곳으로 추산하면 업체당 2명씩, 전국적으로 약 600명의 배전전공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숙련된 배전전공 인력의 신규 유입이 제한적인 데다 기존 인력 역시 고령화되고 있어 단기간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남균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사무총장은 “한전이 필요한 인력 숫자를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 인력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인력이 부족하면 업체 책임, 출동이 늦어도 업체 책임, 사고가 발생해도 업체 책임이라는 식의 운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24시간 대기만 최소 6명…휴가·재난 고려하면 추가 인력 필요”
협력업체들은 24시간 정전 대응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계약상 최소 인원만 산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간 8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6시간을 매일 2인 1조로 운영할 경우 연간 필요한 대기시간은 약 1만 1680인시에 달한다. 이를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정전 복구 대기 업무에만 약 5.62명, 사실상 6명의 전담 교대 인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연차와 병가, 교육, 퇴사 등에 따른 공백과 휴게 시간, 동시다발 정전, 태풍·폭설 등 재난 상황까지 고려하면 최소 2명의 추가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기존 주간 공사 인력과 별도로 정전 대기 전담 인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현재 검토되는 비용 구조로는 충분한 인력 채용은 물론 정상적인 임금 지급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2인 16시간 대기료 30만원…“1인당 시간당 9375원”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정전감시 비용, 즉 대기료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기료는 2인 기준 하루 30만원 수준이다. 이를 2명이 16시간 대기하는 조건으로 단순 계산하면 1인당 시간당 대기비용은 9375원이다. 협력업체들은 해당 금액이 올해 최저임금으로 탄원서에 제시된 시간당 1만 7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야간·연장·휴일 근로에 따른 가산 수당과 퇴직급여, 사업주 부담 사회보험료 등을 고려하면 현행 논의 수준의 대기료로는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가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365일 24시간 운영에 필요한 최소 6명의 교대 인력과 야간근로 가산 수당, 퇴직급여, 사업주 부담 사회보험료 등을 반영한 최소 인건비는 하루 약 68만 8644원이다. 여기에 차량과 안전 장비, 통신비, 유류비, 관리비 등 하루 18만원의 경비를 추가하면 적정 대기료는 약 86만 8644원에 이른다. 한전이 검토 중인 하루 30만원과 비교 시 하루 약 56만 8644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를 365일로 단순 환산하면 협력업체가 연간 약 2억 755만원의 손실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숙련된 배전전공의 실제 임금과 휴일 근로 가산 수당, 추가 예비 인력, 절연차(장비) 구입·임차비 등이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최상구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부회장은 “한전의 정전 복구 대응 비용을 협력업체의 적자로 메우라는 것”이라며 “대기업인 한전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소규모 영세 협력업체에 24시간 대기를 요구한다면 명백한 갑질이자 불공정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기료에 복구공사비까지 포함…업체들 “분리 지급해야”
더 큰 문제점은 한전이 정전 발생 이후 실제 복구공사비를 대기료에서 차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업체들은 정전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365일 24시간 인력과 차량을 대기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만큼 대기료는 정전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되는 비용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실제 정전이 발생해 복구공사를 수행했다면 이에 따른 공사비는 대기료와 별도로 책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저압 단가 업체 관계자는 “복구공사비를 대기료에서 공제한다면 정전복구 업무가 많이 발생할수록 업체의 수익이 감소한다. 한전은 대기료를 지급했다고 말하겠지만 실제 복구공사비를 그 안에서 차감하면 업체가 받는 돈은 더 줄어든다”며 “이는 돈을 주는 척하면서 다시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절연차 한 대로 주간 공사와 긴급 출동 모두 대응?
장비 확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협력업체들은 현재 논의되는 계약 기준에서 절연차 등 작업 차량을 사업소당 1대 수준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로 주간 공사와 정전감시, 긴급 출동, 실제 복구공사를 동시에 수행하려면 추가 차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간 공사 현장에 절연차가 투입된 상황에서 다른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할 경우 즉시 출동할 차량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다발적인 정전이 발생하면 차량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협력업체들은 실제 운영을 위해서는 절연차 차량이 최소 1~2대 더 필요할 수 있으며, 차량 구입비와 임차료, 보험료, 정비비, 유류비 등도 계약 원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시간 내 출동”…패널티보다 면책 기준 먼저 마련해야
출동 시간과 패널티 부과 역시 논란거리다. 협력업체들에 따르면 한전은 1시간 이내 미출동 시 벌점을 부과하고 반복될 경우 계약 해지나 입찰 제한 등의 제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태풍과 폭설, 집중호우, 산불, 도로 통제, 원거리 정전, 동시다발 사고, 한전의 출동 지시 지연 등은 현장에서 임의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기 때문에 명확한 면책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상황까지 일률적으로 책임을 적용할 경우 작업자들이 패널티를 피하고자 위험한 과속 출동과 무리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정전 복구의 신속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와 감전, 추락, 아크 사고 가능성을 키워 중대재해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협렵업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밤샘 대기 후 고위험 복구작업”…안전 담보할 수 있나?
협력업체들의 분노는 현장 근로자의 안전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정전 복구는 단순 민원 대응 업무가 아니다. 감전과 아크, 추락,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이 상존하는 고위험 작업이다.
특히 야간에 장시간 대기한 작업자가 정전 발생 직후 현장으로 이동해 원인을 확인하고 복구작업까지 수행해야 한다면 피로 누적에 따른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협력업체들은 한전 배전운영실이 업무 이관에 앞서 적정 인력과 휴게 시간, 작업 지휘 체계, 안전관리 기준,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 등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공기업이 수행하던 업무를 민간으로 이전하면서 인력과 장비 비용은 충분히 보전하지 않을 경우 한전은 협력업체가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 안전 위험을 동시에 떠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전 복구 업무 피하겠다는 것 아냐…야간은 한전이 맡아야”
협력업체들은 정전 복구 업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전력산업의 특수성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주간 정전 복구 업무는 수행할 의지가 있지만 야간 정전 복구 업무는 지금처럼 한전 배전운영실이 맡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야간 정전 복구까지 민간업체에 일괄 확대하려면 먼저 인력과 비용, 차량, 안전 체계가 현실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전국 배전전공 인력 실태조사 △예비 인력을 포함한 적정 인원 산정 △객관적인 대기료 원가계산 △대기료와 복구공사비 분리 △차량·안전 장비 비용 반영 △사고 책임 및 면책 기준 명확화 △시범 사업 자료 공개 △충분한 현장 의견 수렴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동술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 회장은 “한전 배전운영실이 정전 복구 업무에 투입하는 직원은 2400명으로 추산되고 투입 예산은 2500억원에서 3000억원 사이로 추정되는데, 저압 단가 협력업체에는 1500억원의 예산만 내려주고 인력도 1500여명으로만 수행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업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전은 영세 협력업체의 희생과 근로자의 목숨을 담보로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냐며 “국민에게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려면 그 일을 수행하는 협력업체가 살아남아야 하고 현장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돼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는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국 저압배전전문회사 협의회는 한전에 2027~2028년도 저압정전복구 업무 운영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이달 중순 한전 본사 앞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고 총력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