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전, 기존 자구책 외 인력감축·자산매각안 또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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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한전, 기존 자구책 외 인력감축·자산매각안 또 내놔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3.11.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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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사 분사 후 최대 규모 조직 개편…본사 조직 20% 축소
운영인력 1200명 줄이고 창사 이래 두 번째 ‘희망퇴직’까지
향후 필요 인력 800여명 증원 없이 조직 효율화로 자체 해소
상징적 자산 ‘인개개발원’ 부지 매각 추진…1조원 확보 기대
한전KDN 지분 20% 및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사업도 정리
전력연맹 “자구안, 전력산업 공공성 훼손과 전기 민영화 우려”
한전 나주 본사.
한전 나주 본사.

한국전력(대표이사 사장 김동철)이 사상 초유의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기존 25조 7000억원 규모 재정건전화 계획 외에 조직 혁신과 인력 효율화, 추가 자산매각 등을 담은 특단의 자구책을 8일 내놨다.

한전은 우선 2001년 발전사 분사 이래 최대 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해 본사 조직 20%를 축소하는 방안을 자구책에 넣었다. 기존 8본부 36처에서 2본부 7처를 없애 6본부 29처로 재편하고 1직급 본부장 직위 축소로 상임이사 중심의 책임경영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유사조직을 통합하고 비핵심기능을 폐지해 본사를 정예화하고 현장 중심의 사업소 기능은 강화했다. 또 사장 직할에 준법경영팀을 신설해 내부 부조리 예방 및 이권 카르텔을 원천 차단에도 나선다. 이는 앞서 감사원이 지난 정부 당시 한전 직원들의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비리를 다수 적발한 데 따른 조치다.

사업소는 외부환경 변화에 맞춰 거점화와 업무 광역화를 통해 25% 수준의 단계적 효율화를 추진한다. 소규모 지사를 인근 거점 지사로 통합하고 통합시너지가 큰 업무는 지역본부 및 거점 사업소에서 일괄 수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전력 필수서비스에 대한 소외고객이 없도록 현장지점을 별도로 운영한다.

인력 효율화도 꾀한다. 먼저 공공기관 혁신계획에 따라 올해 1월 감축한 정원에 대한 초과 현원 488명을 연말까지 조기 감축하고 디지털 서비스 확대 및 설비관리 자동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700명 수준의 운영 인력을 추가로 줄일 계획이다.

1961년 창사 이래 두 번째 희망퇴직도 추진한다. 2직급(부장급) 이상 임직원의 내년 임금인상 반납액과 자체 조달로 마련한 재원 확보 범위 내에서 희망퇴직자를 받기로 했다. 단, 구체적인 희망퇴직 시기와 규모는 정하지 않았다. 앞서 한전은 2009~2010년 정부의 공기업 경영 선진화 계획에 따라 42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및 분산에너지 특별법 이행, 원전 수출 추진 등을 위해 약 800명의 대규모 인력 소요가 예상되나 증원 없이 본사 및 사업소 조직 효율화를 통해 해소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자산 매각 방안은 한층 강화했다. 상징적 자산인 인개개발원 부지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인재개발원은 가치가 높은 알짜 자산임에도 우수한 접근성 및 교육여건으로 한전과 국내외 전력산업계 교육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간 자구책에서 제외돼 왔으나 벼랑 끝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매각 결정을 내렸다고 한전은 설명했다.

다만, 한전은 대체시설 비용 확보와 부지 내 연구용 원자로 해체, 154kV 지중송전선로 이설 등의 방안을 마련하고 부지용도 변경을 통한 가치 상향 후 매각 추진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인재개발원 부지 면적은 64만㎡로 매우 넓지만 99.3%가 자연녹지이고 제2종 주거는 0.7%에 불과해 정부, 지자체와 협의해 용도 변경을 해야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경우 매각 대금은 1조원 가량이 될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력산업 ICT 분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자회사 한전KDN의 지분 20%도 매각해 13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재 한전은 한전KDN에 대한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데,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내 증시 상장을 통해 20%를 내놓을 계획이다.

고정배당금이 확보돼 수익성이 양호하고 매각 제한조건이 적어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 칼라타간 태양광사업 보유 지분 38%도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칼라타간 태양광사업 매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약 500억원이다.

한전은 기존 자구책도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택자금 한도축소, 사내대출 금리인상, 해외학자금 영어권 국가 지원 제외는 정비를 완료했으며, ‘주택구입자금 LTV 적용’과 ‘창립기념일 유급휴일 개선’은 규정을 손보기 위해 노조와의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올해 임금인상분도 반납한다. 간부직은 내달 임금협약 체결 이후 임금인상분이 확정되는 대로 반납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또 간부 외 직원의 동참을 위해 임금실무위원회와 노조와의 협의를 연말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부동산 매각·임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남서울본부는 사옥 내 변전소 이설 방안을 수립하고 현재 서울시와 전기공급시설 해제를 협의 중인데, 내년 전기공급설비 해제 인허가가 떨어지면 설비 이설에 본격 착수한다. 서울시 양재동 소재 아트센터 3개층 임대는 임대전문회사를 활용해 올해 안에 계약을 마칠 계획이다.

한전은 지난 9월 출범한 ‘비상경영·혁신위원회’를 통해 자구책의 차질 없는 이행과 내부혁신을 위한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재무위기 대응, 조직·인사 혁신, 신사업·신기술, 미래 전력망, 원전·신재생 등 5개 분과로 구성된 위원회는 김동철 사장이 위원장을, 각 상임이사가 분과장을 각각 맡아 핵심과제 발굴·이행 등 운영 전반을 총괄한다.

김동철 사장은 “국제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시작된 한전의 재무위기는 기업으로서 버티기 어려운 재무적 한계치에 도달했다”면서 “조기 경영정상화, 국민부담 경감을 위해 5개년 재정건전화계획 등 기존의 자구대책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한편 이번에 추가로 발표한 특단의 자구책도 가용한 모든 역량을 쏟아 추진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전의 누적 적자는 47조원, 부채는 201조원에 달한다. 부채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0%에 이르며, 국가 GDP의 10%나 되는 막대한 금액이다.

한편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전력연맹)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전이 내놓은 자구책이 전력공기업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4월 출범한 전력연맹은 한전 전력노조와 한전KPS 노조, 한전KDN 노조, 전력거래소-우리노조, 동서·서부·중부발전 노조가 가입된 연합단체로 한국노총 소속이다.

전력연맹은 한전이 자회사인 한전KDN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한전의 부실화된 역량일 빌미로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의 막대한 투자를 민간에 맡기는 민영화 속셈”이라며 “발전과 송전 등 모든 분야의 정보통신기술(ICT)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업 한전KDN을 처분하면 전력 정보시스템의 신뢰성과 보안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KDN 노조는 정부가 지분 매각을 강행한다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은 “한전과 전력그룹사의 인력, 예산, 전기요금 등 모든 것이 정부 통제 하에 이뤄짐에도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온데간데없다”면서 “전력공기업의 공적 기능을 망가뜨리는 자구안만 강요하고 있어 전력산업 공공성 훼손과 전기민영화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전력산업 경쟁력 약화에 따른 국민 피해와 국가적 손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 정부에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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