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주력전원 원자력·신재생, 전력망 유연성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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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주력전원 원자력·신재생, 전력망 유연성 확보해야”
  • 윤우식 기자
  • 승인 2023.07.14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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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원자력·신재생학회 좌담회…갈등 아닌 공생 해법 찾아
이건영 “원자력과 신재생 유연성 갖춰야 수요 변동 대응”
백원필 “가동원전은 출력제한, 신규원전은 일일 부하추종”
이창근 “가상발전소와 ESS, 섹터커플링으로 유연성 확보”
지난 13일 강원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여정: 원자력과 신재생, 미래 전력망 주력전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 이창근 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오른쪽부터), 이건영 전기학회 회장, 백원필 원자력학회 회장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윤우식 기자)
지난 13일 강원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여정: 원자력과 신재생, 미래 전력망 주력전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 이창근 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오른쪽부터), 이건영 전기학회 회장, 백원필 원자력학회 회장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윤우식 기자)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놓고 대립 구도를 형성해온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학계가 양 진영 간 갈등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미래 전력망 구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난 13일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대한전기학회 제54회 하계학술대회 특별좌담회’를 통해서다.

이번 좌담회는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미래 전력망에서 주력전원이 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유연성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두 발전원의 역할과 과제를 정리해보자는 취지에서 전기학회가 올 초 원자력학회와 신재생에너지학회에 공동 개최를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현장에는 이건영 전기학회장과 백원필 원자력확회장, 이창근 신재생에너지학회장이 직접 패널로 참석, 사전 논의를 통해 정한 3개 소주제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나눴다.

이건영 회장은 “초단위로 변하는 전력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과 신재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백원필 회장은 원전의 유연성 확보 방안으로 꼽히는 탄력운전에 대해 “새로 건설되는 원전부터 적용한 후 필요에 따라 가동원전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이창근 회장은 “신재생에너지가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전력 공급·수요 측면에서 인공지능 활용 발전량 예측과 통합발전소 운영, 대용량 장주기 에너지저장, 섹터커플링 등의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3개 학회는 이날 만남을 각 에너지의 기술적, 경제적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로 삼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좌담회를 열어 탄소중립을 통해 어떻게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지 함께 노력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본지는 각 주제별 3개 학회 회장의 발언 내용을 정리했다.

이건영 전기학회 회장(왼쪽부터), 백원질 원자력학회 회장, 이창근 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사진=윤우식 기자)
이건영 전기학회 회장(왼쪽부터), 백원질 원자력학회 회장, 이창근 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사진=윤우식 기자)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증가 시 전력망 문제점과 극복 방안

이건영= 원자력과 신재생이 100년이 넘는 기간 구축된 기존 교류 전력망의 운영 체계 하에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공급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망 측면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경직성이다. 실시간 전력수요 변동에 따른 출력제어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현재로선 초 단위로 변동하는 전력수요를 추종하며 전력 생산량을 조절할 수 없는 큰 약점이 있다. 신재생 발전제어 기술 확보를 위한 제반 절차 및 합리적인 운영 전략 등에 대해 발전사업자와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및 정부 등 관계 기관들이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또 화재 사건 이후 침체된 ESS 사업도 다시 활성화하고 소규모 양수발전소 건설 등 유연성 백업 전원에 대한 투자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만일 전력망 유연성 확보가 늦어질 경우 원전과 신재생의 출력저감 또는 출력정지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발전사업자의 손실이 커지면서 에너지원 간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

신재생의 간헐성과 변동성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재생 예측 기법 고도화를 통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실시간 변동성을 상쇄시켜줄 속응성 자원(Quick Start)의 확대를 위한 시장 제도적 유인 방안이 필요하다. 또 전력계통 신뢰도와 관련된 법과 고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술규제도 병행돼야 한다.

신재생 관리 인프라가 보급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 신재생 발전기가 몇 대 있는지, 발전량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사후 통계와 추정기법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수십만 대에 달하는 신재생 설비 관리를 위해 자동차 등록 및 검사제도처럼 국가 차원의 통합된 관리시스템과 검사체계 도입이 시급하다. 차량번호만 입력하면 관련 정보와 이력을 조회할 수 있듯이 신재생 설비도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해 정보를 등록하고 정기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주력전원 유연성 확보 방안

백원필=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묶어 경직성 전원으로 분류하지만 그 특성은 완전히 다르다. 재생에너지 경직성은 지구의 자전과 날씨 변화에 의한 간헐성과 변동성에서 비롯되므로 에너지저장장치나 다른 전원의 도움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면 화력이나 수력발전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은 프랑스에서 충분히 입증됐듯이 상당한 수준의 일일 부하추종과 주파수제어 등 탄력운전 기능을 갖추고 있다. 다만, 그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전 탄력운전을 하지 않은 것은 연료비가 석탄발전에 비해 낮아 탄력운전 의무를 유예 받고 100% 출력의 기저부하로 운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우리나라 원전들이 바로 탄력운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요구되는 탄력운전 수준에 따라 제도적, 기술적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원전 탄력운전은 주파수제어 운전과 계획된 일일 부하추종으로 나뉜다. 주파수제어 중 터빈전단의 가버너 밸브를 이용한 정격출력 3% 이내의 조정은 현재도 가능하다. 월성원전에서는 이미 실증시험도 마쳤다. 하지만 출력변동 범위를 5~10%까지 더 확대하려면 제어봉을 구동해 원자로 출력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므로 다양한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원전의 탄력운전은 새로 건설되는 원전부터 적용한 후 필요에 따라 가동원전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규원전의 탄력운전은 제어봉 및 핵연료 연소도 불균형, 연료의 건전성, 안전해석 범위, 운영기술지침서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기술적 제약을 해소할 수 있다. 월성원전을 제외한 가동원전의 경우 본격적인 탄력운전보다는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출력감발을 하는 방법으로 전력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합리적 믹스, 재생에너지 간헐성·변동성 극복을 위한 ESS, 양수발전, 원전의 열 이용 확대 등이 이뤄진다면 원전의 탄력운전 확대는 필요하지 않다. 다만,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 신규원전에 대해서는 일일 부하추종과 주파수제어 기능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고 이를 유인할 제도 및 시장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부하추종의 경제성을 고려해 기저부하용 원전과 탄력운전용 원전으로 구분해 운영하는 것이 좋다.

이창근= 신재생이 주력전원으로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 공급·수요 측면에서 기술개발 및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먼저 인공지능을 이용해 변동성 및 발전량을 예측하는 기술을 고도화함으로써 전력망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8% 이내로 예측할 경우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 등을 올해 하반기에 실시할 예정인데, 인공지능 등을 이용한 발전량 예측과 전력망 운용 기술이 결합되면 유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소규모 분산에너지 자원을 결합한 통합발전소(VPP) 운영을 확대해 전력수요에 대응하고 전력망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용량 장주기 에너지저장기술도 활용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 재생에너지 평균 발전비중이 20% 이상인 국가들은 이미 ESS의 설치를 의무화해 전력망의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출력제한 문제가 심각한 제주의 경우 총 600MW의 ESS 설치를 통해 전력망의 유연성을 높일 예정이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1에서는 장주기 에너지저장기술 위원회가 설립돼 탄소중립을 향한 재생에너지 저장시스템에 대한 비전이 공유된 바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등을 통해 10시간 이상의 장주기 에너지저장시스템이 전력망에서 역할을 한다면 유연성 공급자원으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력과 가스, 열 등 비전력 에너지 계통 간 통합 운영 개념인 섹터커플링도 전력계통 출력제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다. 전력망의 유연성 확보뿐만 아니라 그린수소 등 미래 에너지산업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신산업 분야다.

◆미래에너지 주역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

이건영= 원자력과 신재생은 전력계통이라는 항공기의 양 날개 엔진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출력감발과 과잉발전, 유연성 부족이 라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음과 진동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원자력과 신재생 비중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한쪽이 너무 힘을 내도, 한쪽에 문제가 있어도 안 된다. 원자력과 신재생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3개 학회가 협력을 시작하는 것은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 기술사례와 시사점을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가졌으면 한다. 매년 각 학회가 정기적인 개최하는 행사에 3개 학회가 공동으로 참여해 보다 구체적인 주제와 현안을 중심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학계뿐만 아니라 산업계, 정부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국민을 위한 교육·홍보사업도 필요하다. 학자 또는 전문가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잘못 알려진 부분들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통해 에너지산업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에너지 정책에 대해 오피니언 그룹으로서 입장을 내는 역할도 하겠다. 현재 많은 학자들이 정부나 전력 관련 유관기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전문가 협의체에 참여해 독립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지만 향후에는 학회 내 의견 공유 활성화, 기존 위원회 또는 별도 에너지 정책 관련 위원회 신설 등을 통해 학회 차원의 입장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백원필= 3개 학회 공동으로 에너지기술포럼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에너지 정책 수립 시 우리나라 고유의 에너지 환경, 인구 및 산업 환경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 사례를 중심으로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막상 정책을 실행하려고 보면 벽에 부딪혀 서로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는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왔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실효성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인구·산업 환경 분석이 필요하며, 그 역할은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할 일이 많다. 2030년 NDC 및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가동원전 10기의 계속운전을 지속해야 하는데, 관련 인허가 절차와 평가 방법 등이 개선돼야 한다. 원자력안전법 개정 등 법적 근거 강화, 계속운전 제도와 주기적안전성평가 제도 분리, 20년 단위의 계속운전 승인, 실질적 계속 운전기간 보장 등이 제안되고 있다. 원자력학회는 기술적 또는 논리적 이유를 뒷받침하는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이창근=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원이 무탄소 전원으로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전환돼야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신재생이 에너지 분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현재 9.2%인 발전 비중을 2030년 21.6%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25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을 위해서라도 신재생 발전 비중은 더 늘어야 한다.

신재생은 온실가스 감축 역할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시대 기술 패권을 확보하고 미래 에너지 산업의 국가 경쟁력 향상이라는 중차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RE100과 CF100을 선언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신재생이 해야 할 역할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신재생 분야 전문가들의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력계통의 유연성과 출력제한 문제는 신재생 보급에 있어 위기로 여겨지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학·연·관의 협력적 생태계 구축 노력은 신재생이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도약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원자력 등 타 전원과의 조화는 신재생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켜 탄소중립이라는 담대한 국가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조화롭고 유연한 키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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